남이 쓴 글

유혹자

위스키 마시는 부처 2022. 9. 11. 22:23

유혹자는 삶을 전사의 눈으로 바라본다. 그들이 보기에 모든 사람은 공략을 기다리는 높은 성이다. 유혹은 일종의 침투 과정이다. 유혹자는 먼저 목표로 삼은 사람의 마음을 공략한다. 일단 마음을 빼앗긴 사람은 유혹자를 매력적인 존재로 생각하고 온갖 공상에 빠진다. 그리고 마침내 마음의 빗장을 풀고 육체적으로 굴복하게 된다. 유혹자는 상대방을 한번에 공략하려 들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모든 일을 우연에 맡기지도 않는다. 마치 유능한 장수처럼 유혹자는 계획과 전략을 세우고 목표물의 약점을 파악해 공격을 시도한다.

유혹자가 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사랑이나 로맨스를 대단히 성스럽고 신비한 것으로 생각하는 우리의 편견이다. 우리는 사랑이나 로맨스가 마치 운명처럼 저절로 다가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사고방식은 참으로 낭만적으로 비친다. 하지만 사실 그것은 우리가 게으른 데서 비롯된 생각이다. 누군가를 유혹하려면 그 사람이 얼마나 중요하고 사랑스러운 존재인지를 보여주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사랑과 로맨스를 우연에 맡기는 것은 재난을 가져오는 지름길이자, 우리가 그런 일들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드러낼 뿐이다. 카사노바는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는 사랑과 로맨스를 위해 열심히 기술을 습득했다. 그런 노력 끝에 강력한 유혹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마술의 주제가 아니라 심리학의 주제다. 일단 유혹의 대상으로 삼은 사람의 심리를 이해하고 그에 적합한 전략을 세운다면, 마법의 주문을 마음대로 구사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된다. 유혹자는 사랑을 신성한 것이 아니라 쟁취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유혹자는 결코 자기도취에 빠지지 않는다. 그의 시선은 언제나 안이 아니라 밖을 향해 있다. 누군가를 처음 만날 경우, 유혹자는 상대방의 생각을 읽으려 하고 그의 눈으로 세상을 보려 한다. 유혹자가 자신보다는 상대방을 바라봐야 하는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자기도취에 빠진다는 것은 불안하다는 증거다. 불안한 심리를 가지고서는 결코 유혹자가 될 수 없다. 물론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유혹자는 자기 밖의 세상에 몰두함으로 자기를 의심하는 심리를 극복한다. 세상을 바라볼 때 그들의 마음은 한껏 부풀어오른다. 그렇기에 그의 주변에는 늘 사람들이 모여든다. 둘째, 상대의 생각을 읽는다는 것은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한다는 뜻이다. 상대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귀중한 정보를 많이 얻게 된다. 즉 무엇이 상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지를 알게 된다. 일단 마음을 움직이는 데 성공하면 상대의 판단력을 흐리게 해 덫에 빠뜨릴 수 있다. 바꾸어 말해 상대에 대한 정보를 얻게 되면, 그 사람에게 좀 더 많은 관심을 집중시킬 수 있다. 오늘날 사람들은 대개 편견이라는 색안경을 끼고 서로를 대한다. 하지만 유혹자는 편견 없이 상대의 시각으로 바라본다. 따라서 상대의 생각을 읽는 것은 그 사람을 공략하기 위한 첫 번째 전술이다.

유혹자는 마치 벌이 이 꽃에서 꽃가루를 묻혀 저 꽃에 날라주는 것처럼 자신을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가져다주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 우리는 즐거운 게임과 놀이를 하며 지냈다. 하지만 성인이 된 뒤에는 그런 즐거움을 잊어버린 채 책임감과 의무감에 짓눌린 삶을 산다. 유혹자는 사람들이 즐거움을 원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연인이나 친구에게서도 충분한 즐거움을 얻지 못하고, 스스로도 즐거운 삶을 만들어낼 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런 사람들의 삶에 뛰어들어 로맨스와 모험을 제공하는 유혹자를 거부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즐거움은 다른 사람이나 경험에 의해 압도되는 감정, 곧 우리의 한계를 벗어나게 만드는 감정이다. 사람들은 무언가에 압도되어 일상의 지루함에서 벗어나기를 원한다. 그들은 속으로 "나를 유혹해주세요"라고 말한다. 유혹자는 즐거움을 제공할 때 사람들이 자신을 따르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즐거움을 경험하는 순간, 사람들은 마음을 활짝 열고 유혹자의 손길에 기꺼이 자신을 맡긴다. 유혹자는 스스로도 즐거움에 민감하고자 노력한다. 스스로 즐거움을 느낄 줄 알아야 다른 사람들에게도 즐거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유혹자는 삶을 무대로 보고, 모든 사람을 배우로 생각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삶에서 자신의 역할이 한정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스스로를 불행하게 느낀다. 하지만 유혹자는 어떤 모습으로든 변할 수 있고, 많은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그리스 신화의 제우스 신을 보라. 그는 항상 만족할 줄 모르고 젊은 처녀들을 유혹한다. 일단 목표물을 정하면 상대방에게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는 모습으로 변신한다). 유혹자는 자신의 역할을 고정시키지 않고, 필요한 경우 어떤 역할이든 다 소화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자유, 즉 그의 몸과 마음에 존재하는 유연성이 그를 매혹적인 존재로 만든다. 사람들은 현실만을 좇지 않는다. 그들은 환상과 놀이를 원한다. 유혹자의 차림새, 유혹자에게 이끌려 가게 되는 장소, 그의 말과 행동 등 모든 것이 현실에서 벗어난 환상의 세계를 연상케 하며, 영화 속에서나 있음직한 즐거움을 준다면 그 누가 유혹을 뿌리칠 수 있겠는가! 유혹은 현실의 세계에 존재하는 극장과도 같다. 그곳에서 환상과 현실이 마주친다.

마지막으로 유혹자는 모든 도덕적 판단에서 자유로운 태도를 가지고 삶에 접근한다. 그에게 삶은 게임이요, 유희의 장소일 뿐이다. 유혹자를 비난하는 도덕주의자들도 속으로는 그가 가진 유혹의 힘을 시샘한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기에 유혹자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다. 유혹자는 세상에 유혹적이지 않은 것은 없다고 믿기 때문에 도덕적인 원칙에 얽매이지 않는다. 그는 모든 것이 삶 자체가 그렇듯이 정해진 틀 없이 유연하다고 믿는다. 유혹은 일종의 속임수이지만 사람들은 곁길로 나가기를 원하고 유혹받고 싶어한다. 따라서 유혹자는 어디서나 쉽게 희생자를 찾을 수 있다. 도덕적인 판단을 내리려는 습성을 벗어버리고, 삶을 유희로 보는 유혹자의 철학을 받아들인다면 삶을 좀 더 자연스럽고 수월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로버트 그린, <유혹의기술> 12~14쪽